아픈 몸을 이끌고 눈엣가시인 병원을 다녀온 한 노인

환상

아픈 몸을 이끌고 눈엣가시인 병원을 다녀온 한 노인

"아이고..몸이 시원찮어.. 어제 새벽부터 몸이 안좋더니 결국 병원에 와버렸구려.. 할멈 내 이 늙은이가 아파 미안하오.."

[괜찮수다, 어여 병원 가자구요.]

 

 

20분 후

병원을 나선 노부부는 사람들이 많은 탓에 대기시간이 조금 길어졌다.

 

[할멈, 나도 이제 건강검진을 받아봐야하지 않겄수?]

[그래요, 작년에 나도 받아봤는데 다행히도,

다 정상으로 나와서 몸이 무척 건강하구려.]

 

1시간 후

병원에서 진료를 받은 후, 할아버지는 궃은 세월을 다 견디고서

얻은 병이 하나 있었다. 남들과 비교하면 건강할지언정

할아버지에게는 너무나 큰 시련이었다.

 

[사람이 아프면 말 수가 적어지고, 한숨만 나오나봐요.]

[그래요, 영감. 우리는 나이도 있으니 이제 온몸이 다 아프죠.]

 

그런데 그들은 70대 노부부지만 남들과 비교하면 정말

몸이 아주 정정한 분들이셨다. 게다가 그 나이때가 되면

누구든지 아플 수 있었다.

아픈건, 애나 어른이나 똑같이 시련이 찾아오니까.



병원에 입원을 하고 누워있던 할아버지

 

옆을 보니, 20대로 보이는 한 아가씨가 누워있었다.

[저 아가씨는 나이도 젊어보이는데 어디가 아파서 왔을까?]

할아버지는 생각했다.

 

병원에서 진찰을 돌고계시는 의사분이 오시더니 그 아가씨에게

말을 건넸다.

 

[어때요, 좀 괜찮나요?]

[아니요..이제 막 몸이 아프기 시작했어요. 진통제 좀 더 넣어주시겠어요?]

[알겠습니다. 그래도 전보다 호전된 상황이라 이제 좀 나아지실겁니다.]

 

아가씨는 식습관이나 뭐가 잘못되서 병원에 온 것이 아니었다.

단지, 갑자기 찾아온 병으로 몸이 많이 허약해진 것이다.

 

 

70년간 살아온 노부부에게도 아픔은 그저 시련이라고만 생각했다.

누구에게든지 아픔은 늘상 찾아올 수 있고, 그것이 명이라면

그때까지 잘 참고 버티다가 그냥 가는 것이었다.

 

그런데 노부부에게는 단지 이 아픈 몸이 세월과 허약해진 몸을

이끌며 병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였지만 자신보다 나이가

젊은 사람들에게 병이란 과연 어떤 조바심을 갖게 할지

자신의 젊은 시절을 떠올리게 했다.



40년 전

이제 젊은 것도 끝이다. 몸을 생각해야지. 하고서

열심히 운동을 하고 돈을 벌고, 가정을 꾸려나갔다.

아이들을 대학교에 입학시키고 이제 남은 건

아내와 함께 노후를 꿈꾸는 일만 남았다.

 

어찌보면, 할아버지의 젊음은 이미 과거도 한창 지난

과거의 시간에 불과했다. 요즘처럼 휴대폰으로 모든 걸

할 수 있는 시대가 아니기 때문에 할 수 있는 건 오로지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가정을 꾸려나가며

아이들을 풍족하게 자라게 하여 이 세상에 내보내는 일이었다.

 

 

아픈것도 잊은 채 살아왔던 사람이었다.

어떻게 사람이 아프지 않을 수 있겠나.

늘상 아팠지만 병원비로 날리기 싫어 꾹 참고

지금까지 버티며 살아왔던 것이다.

세월을, 나날들을, 인생의 가치관을 너무나

다르게 살아온 요즘 젊은이들하곤 당연히 생각이 달랐고,

그들에게 아픔이 오면 대충 어떤 마음인지는 알 것 같았지만

정확히는 알지 못했다.

 

젊은 게 청춘이고, 아픈 게 당연하고, 늘 좋을 줄만

알던 그 옛 기억은 이미 지나버린 과거에 불과했고.



이제는 젊음도 이 세상이 어두운 면으로 가득찬 것을

예시로 보여주며 젊은이들을 벌벌 떨게 만들고 있었다.

 

 

이 세상은 충분한 사랑만으로 버티기 어려운 시대다.

시대를 타고난 만큼 겪어야 할 단점들은 수북히 많았다.

저것이 좋고, 저것이 갖고 싶고, 저 자리에 오르리만큼

큰 꿈을 가지고는 있지만 이 세상은 쉽게 자리를 내어주지 않는다.



이미 경험해본 할아버지는 그 모든 걸 알 순 없어도,

[얼마나 힘들까] 라는 생각은 수도없이 해왔던 것 같다.

 

이 일은 아프면서부터 다시 재생된 생각이었다.

우리는 그냥 받아들일 뿐인데 우리의 자식들,

후손들은 얼마나 더 아픈 고통을 껴안고 살아갈지

내면을 들여다보면 감히 헤아릴수도 없는 고통이다.

 

[할아버지! 우리때보단 할아버지 때가 더 고생이지.]

[아니, 왜?]

[우리는 하고싶은 거 입고싶은 거 모든 다 할 수 있고

세상이 좀 더 편해져서 살기 좋아졌지만 할아버지때는

하고싶어도 할 수 있는 선택권이 적어서 큰 꿈도

못꾸고 그냥 세월만 다 가셨잖아.]



[아니다. 나와 너의 시대가 다르다고 해서 누가 더

편하고 누가 더 살기 행복하냐는 말은 시대적 배경으로

판단하면 안된다. 현재 자신이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

앞으로의 미래 또한 중요하다만, 지금 당장 숨을 쉬고

살아있는 자체가 소중한거란다. 할아버지는 시대가 좋아졌어도

요즘 사람을 질투한다거나, 나의 어린 시절을 원망하지 않는단다.

할아버지가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그래서 네가

태어난 것이 아니겠느냐.]

 

 

할아버지는 그간 세월을 원망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나와 할아버지의 현재를 존중하며

큰 교훈을 내게 들려주셨다.

 

[현재가 행복하느냐? 과거가 불행하느냐?

미래가 두렵느냐? 나는 태어날 땐 희망이었고

좌절했을 때도 희망이었고 죽을 고비를 넘겼을 때도

희망이었다. 그런데 너희를 낳고 난 후부터

행복이 시작됐단다.]

 

아픔이라는 건 때론 사람을 힘들게 하고

병들게 하고 더 약하게 하지만

사람을 더 강하게 하기도 한다.

그동안 멀쩡했을 땐 몰랐는데

아프고 나면 세상이 다르게 보이더라.

 

있는 것에 감사하고 또 감사하고

서로 사랑하며 잘 살아야한다.

 

그것이 할아버지의 교훈이었다.